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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 윤 대리는 꿈꿨던 발레복을 꺼내 입는다

by 전남복지재단_교육사업 posted Aug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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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제 한달]
① ‘주 52시간제’가 바꾼 삶의 풍경

탁구·꽃꽂이·야구 사내 동아리 활발,  집→회사 쳇바퀴 벗어나,  꿈도 못꿨던 취미생활에 ‘소확행’
퇴근 뒤 발걸음 바빠진 직장인들,  제빵기술 배워 ‘인생2모작’ 준비도

자유시간 막막한 직장인 위해,  회사가 나서 취미생활 배달까지
 
한강 카약 체험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직장인들. ‘프립’(Frip) 제공
한강 카약 체험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직장인들. ‘프립’(Frip) 제공

 

 

 

 

00503354_20180731.JPG기대와 우려가 엇갈렸던 ‘주 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된 지 한 달이 흘렀다.

제도 시행에 잘 적응한 대기업을 중심으로 가족·동료와 함께 여가를 즐기며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게 됐다는 환호성이 나온다.

반면 ‘야근 체제’를 중심으로 형성된 상권이 무너지며 생계유지도 어렵게 됐다는 소상공인들의 아우성도 함께 들린다.

한 직장에서도 퇴근 시간 차별이 나타나거나, ‘무늬만 노동시간 단축’으로 무마하려는 꼼수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에서 여전히 소외돼 있는 이들도 많다.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 한 달,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세 차례로 나눠 짚어본다.

 

지난 30일 저녁 7시께 서울 광화문 케이티 사옥 지하 탁구장에서 이 회사 직원들이 ‘번개 시합’에 열중하고 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지난 30일 저녁 7시께 서울 광화문 케이티 사옥 지하 탁구장에서 이 회사 직원들이 ‘번개 시합’에 열중하고 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오! 나이스” “좋~아” “그렇지” “화이팅”

 

아직 한낮의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 30일 저녁 7시,

서울 광화문에 있는 케이티(KT) 건물 지하 3층에선 탁구 경기의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상금도 경품도 없는 친선 경기지만 다들 국가대표만큼이나 진지한 눈빛으로 탁구공을 응시했다.

이날 경기에 나선 이들은 이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로 꾸려진 탁구동호회 회원들이다.

나흘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밴드’에 ‘번개 탁구’ 신청 글이 올라오자 순식간에 참가를 희망하는 댓글이 달렸다.

경기에 참여한 탁구동호회 회원 이재선(56)씨는 “한 달에 세 번은 ‘번개’를 치는 것 같다”며

“같은 부서가 아니면 얼굴도 모를 동료들과 같이 땀 흘리고 퇴근하면 하루가 가뿐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가입된 이 동호회는 회원수가 40명에서 80명으로 크게 늘었다고 했다.

동호회는 늘어난 신입회원을 고려해 탁구장 구석 창고까지 탁구대를 추가로 설치했다.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으로 규모가 큰 회사들을 중심으로 퇴근 뒤 풍경이 이렇게 조금씩 바뀌고 있다.

 

 

■ 동료와 함께 하는 취미생활…“함께 해서 좋아요”

이 회사는 오후 5시면 1시간 안에 업무를 마무리하라는 팝업창이 컴퓨터 화면에 뜬다.

6시 이후 일하려면 이때 미리 ‘연장근무’ 신청을 해야 한다.

오후 6시부터는 내부 업무 포털과 사내 메신저 등의 접속이 차단된다.

노동시간 단축에 발맞춰 사전에 준비해 둔 시스템이다.

지난 3월 ‘9 to 6(9시 출근·6시 퇴근)’ 시행 등으로 케이티의 사내 동호회는 지난해 12월 2047개에서

올해 6월 2162개로 120여개 늘었다.

 

 

한 의료기기 제조업체에 다니는 정아무개(29)씨도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 뒤 사내 동호회에 관심이 생겼다.

정씨는 “아무래도 육아 부담 때문인지 기존에는 축구, 농구, 야구 등 남성 중심의 동호회가 잘 됐는데,

7월 이후 꽃꽂이 동아리나 볼링, 탁구 등 남녀가 같이 할 수 있는 동아리가 많아졌다”며

“직장 동료들과 함께 취미생활을 즐길 기회라 생각돼 동아리 가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그동안 등록만 하고 못 나갔던 필라테스 학원을 일주일에 세 번씩 나간다.

그는 “근로시간 단축 전에는 6시쯤 저녁을 먹고 일하다가 8시가 넘어서 퇴근했는데 요즘은 5시30분에 퇴근한다”고 말했다.

야근 전에 그날 일을 해치워야 해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 시간’을 막막해 하는 직장인들에게 회사가 나서 맞춤형 취미를 소개해 주는 사례도 있다.

효성그룹은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 뒤 ‘취미구독 서비스’를 하고 있다.

간단한 성향 테스트를 통해 적합한 취미를 골라주고, 성향에 맞는 ‘취미상자’를 배달해 주는 일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채희석(35)씨가 받은 취미상자 안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의 프라모델(조립식 장난감)과

조립용 공구, 에나멜 물감과 채색용 붓 등이 담겨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프라모델 조립을 해봤다는 채희석(35)씨는 “주변에서 ‘취미가 뭐냐’고 질문하면

30대 중반이 되도록 답을 하기 어려웠다”면서 “업무 외의 일로 몇 시간을 집중해본 게 정말 오랜만”이라고 말했다.

그는 “퇴근 뒤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설렘이 활력소가 된다”고 말했다.

 

 

직장인 채희석씨가 난생 처음으로 만들어 본 건담 프라모델을 들어보이고 있다. 효성 제공
직장인 채희석씨가 난생 처음으로 만들어 본 건담 프라모델을 들어보이고 있다. 효성 제공

 

■ 회식 대신 카약

한 증권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박한별(29)씨는 함께 여가 활동을 할 동료를 모으는 플랫폼 서비스인 ‘프립’(Frip)을 통해

‘한강 뚝섬유원지 선셋 카약’을 즐기고 있다. 야근이 잦았던 한 달 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박씨는 “7월 이전에는 저녁 8시건 밤 10시건 습관적으로 야근하는 분위기여서 평일 취미생활은 꿈도 못 꿨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3번은 6시 정시 퇴근을 한다”며 “부리나케 뚝섬으로 달려간 뒤

카약에 타면 해가 넘어가는 물 위에서 야경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박씨 같은 직장인의 참여가 늘면서 평일 저녁 7~9시까지 진행되는 한강 카약 프로그램은 7월에 참가자가 두 배 이상 늘었다. 안용진 한강 카약 수업 호스트는 “평일에 보통 5~10명 정도 참여했는데, 이번 달부터 평균 20명이 온다”며 “강남역 인근에서 6시 정시에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여가와 친목’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같은 부서 직장인들이 단체로 카약 체험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안용진 호스트는 “직장 동료 10여명이 함께 와서 카약을 즐기는 경우도 있었다”며 “회식이나 야유회 대신 카약처럼 일일 여가 프로그램을 함께하는 직장인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박아름 프립 매니저는 “7월 프립 신규 가입자가 지난달보다 40%가량 늘었고, 참가자도 20% 이상 늘었다”며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으로 여가 활동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은 직장인들이 주로 가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제쳐놓았던 취미생활을 다시 시작한 직장인들도 많다.

직장인 윤아무개(30)씨는 집 주변 대형마트 문화센터에서 성인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수업이 시작되는 오후 6시25분은 조기 퇴근이 아니면 참여하기 힘든 시간이다.

이 대형마트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줌바댄스, 타로카드, 오카리나 등 평일 저녁 취미 강좌를 가을학기부터

30% 늘리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직장인 박아무개(32)씨도 7월부터 제빵학원에 등록했다.

평소 빵을 좋아해 제빵 기술을 배워보고 싶었다는 박씨는 그동안 불규칙한 퇴근 시간 때문에 평일 저녁반은 엄두도 못 냈다. 박 씨는 “7월 전에는 평균 퇴근 시간이 저녁 7시30분이어서, 집에 도착하면 저녁을 먹고 쉬다가 잠들곤 했다”며

“배워보고 싶었던 일이라 재미로 시작했지만, 적성에도 잘 맞는 것 같아 자격증을 따고 ‘인생 2모작’ 준비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매일밤 잠자는 모습만 보다, 이제 아이 목욕은 제가 담당해요”

 

 

 

“퇴근하면 아이는 늘 자고 있었어요. 아내 혼자 독박육아였죠.”

 

유통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한아무개(34)씨는 21개월 된 딸이 있다.

부모의 손길이 한창 필요한 때이지만 늦은 퇴근으로 평일 육아는 사실상 아내 몫이었다.

한씨는 주 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되기 전 거의 매일 저녁 8시가 넘어 퇴근했다.

밤 10시가 넘는 날도 많았고, 일이 많은 날에는 자정까지 일했다. 퇴근 뒤 집에 오면 아이는 잠들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와 함께 잠드는 일이 많은 아내와 대화도 줄었다.

조용히 씻고 난 뒤 홀로 저녁을 챙겨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가족과 한 집에 머물지만 외로움을 느끼던 날들이었다.

살을 맞대고 사는 가족이지만 ‘활동시간대’(타임테이블)가 포개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노동시간 단축으로 한씨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저녁 6시30분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아이를 목욕시키는 게 한씨의 몫이 됐다.

그 사이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면, 설거지와 아이 장난감을 치우는 일은 한씨가 맡았다.

아이를 재운 뒤 아내와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하루를 정리하는 여유도 생겼다.

한씨는 “아이가 늘 엄마만 찾았는데 아빠랑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아빠랑 노는 시간도 즐거워한다”고 웃었다.

한씨의 아내 차아무개씨는 “육아는 퇴근 개념이 없는데, 남편이 일찍 집에 들어와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주니 저녁에 산책하는 등 취미 생활을 할 수 있어 삶의 질이 함께 높아졌다”고 전했다.

공유할 수 있는 시간대를 조정한 것만으로도 가족의 삶에 질적인 변화가 생긴 셈이다.

 

 

건설 회사에 다니는 신아무개(29)씨의 삶도 달라졌다.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건설 현장에서 보내는 신씨는 점심을 김밥으로 때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저녁 8시, 고단한 몸을 이끌고 현장에서 사무실로 돌아오면 서류 작성 업무가 그를 기다렸다.

집에 오면 늘 밤 10시가 넘었다.

뭘 해볼 틈도 없이 씻고 누우면 곯아 떨어졌다. 젊은 나이지만 ‘이렇게 살다 잘못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 달 전부터 1시간30분이라는 넉넉한 점심시간이 생겼다.

비록 사 먹는 밥이지만 균형 잡힌 식사를 챙길 수 있게 됐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도 하게 됐다.

유연근무제 시행으로 ‘오전 근무’ 날은 오후 3시30분 퇴근해 헬스장에 간다.

‘오후 근무’ 날에는 오전에 헬스장에 들른 뒤 출근한다.

신씨는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리고 체력도 좋아져 업무 집중도 잘 된다”며

“적어도 과로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웃었다.

 

 

패션 회사에 다니는 이아무개(29)씨도 운동을 선택한 쪽이다.

7월부터 아침 8시 출근해 오후 5시 퇴근하면서 좋아하는 농구 동아리에 가입했다. 게임은 저녁 7시부터 뛴다.

그는 “주 52시간 시행 전후 취침시간은 같지만, 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하고 잠들기 때문에 덜 피곤한 느낌”이라고 했다.

이씨는 최근 다른 요일에 받을 수 있는 야구 레슨을 알아보고 있다.

 

 

의료기기 제조업체에 다니는 김아무개(51)씨는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으로 식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퇴근이 빨라지면서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먹을 동료를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내도 직장에 다녀서 저녁을 준비할 여유는 없다.

둘이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 일이 많아져 부부 사이는 좋아졌는데 지난달 식비는 꽤 늘었다”고 털어놨다.

 

 

 

 

권지담 신민정 기자 gonji@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55701.html#csidxca734857de66737942ff1c5ec216c63 onebyone.gif?action_id=ca734857de6673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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